2017년 3월 13일 월요일

조영애 박모세 노래가 좋아 모세의 기적,나이 교회 간증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2013년 1월 29일 강원도 평창 용평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박모세(나이 21세·삼육재활학교)씨가 맑은 목소리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연단 한쪽에 서서 초조한 기색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어머니 조영애(49)씨는 아들이 무사히 애국가를 마치자 환하게 웃음 지었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어제 평창에 도착하자마자 모세가 가벼운 감기 증세를 보여 밤새 잠을 설쳤거든요." 박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뒤쪽 머리뼈가 없어 뇌가 머리 밖으로 나왔다. 대뇌의 70%, 소뇌의 90%를 절단하는 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지체장애 3급·시각장애 4급·지적장애 3급이었다고 합니다.





박모세 애국가 동영상

중복장애 1급 박모세 찬양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어머니 조씨는 "처음엔 그저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살아서 엄마 옆에 있게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만약 한국에 '모세의 기적'이 있다면 바로 우리 (박) 모세일 것"이라 했다. 조씨는 힘겹게 세상의 빛을 본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 지었다. 온 가족이 다니는 용인 성결교회 목사가 홍해를 가른 모세처럼 기적을 만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어준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박모세는 생후 18개월쯤 뇌수가 흐르지 않아 한 차례 더 큰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 조씨에겐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었다. "수술 뒤 중환자실에 누운 아이의 온몸에 각종 의료 장비가 달려 있어 어디 만질 데가 없었어요. 어리고 어린 아이의 머리 두 곳에 큰 관이 꽂힌 걸 보니…. 그날 평생 울 거 다 울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1

박모세는 이후 뇌 수술을 두 차례 더 받았고 뒤틀린 다리 교정 수술도 했다. 거동이 불편해 집에만 있던 박모세가 놀이터와 운동장에서 동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를 듣고는 "어, 엄마…나도 뛰어놀고…싶어요. 축구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조씨는 가슴이 답답해졌다고 합니다!

어둡기만 한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뜻밖의 기적이 일어났다. 박모세가 일곱 살 때 수원의 선교원에서 찬송가를 부르게 했더니 한 번도 노래를 배운 적 없던 아이가 음정, 박자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부른 것이다. 장애가 있지만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갖췄다는 소문이 퍼지며 박모세는 이후 장애아 학부모 행사들에서 찬송가를 부를 기회를 얻었습니다.

가까스로 발견한 재능이었지만 부모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노래를 가르칠 엄두가 안 났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박모세 아버지의 월수입은 200만원 안팎. 모세 수술비 등으로 생긴 빚까지 있어 통장 잔고는 늘 바닥이었다. 다행히 2009년 박모세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장애인 복지단체 '두드림'의 지원으로 정식 성악 레슨을 받게 됐다. 박모세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이들의 도움으로 2002년 여자 프로농구 경기, 2009년 한국스페셜올림픽 전국 하계대회에서 애국가를 불렀다. 이번 평창 스페셜올림픽 개막식은 그의 세 번째 애국가 공연이었습니다.

조씨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많은 분의 도움으로 모세가 여기까지 왔다"며 "그래서 모세에게 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항상 가르친다"고 말했다. 박모세는 삼육재활학교에서 학우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일을 도맡는다고 합니다!

한편 '조영애 박모세 부모 엄마 어머니 이름인데 아버지 아빠 이름은 미공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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